최근에 갑자기 파워빌더 개발자분들의 댓글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네요. 아무래도 지난달에 썼던 '굿바이 파워빌더' 글이 파워빌더 개발자분들을 꽤 자극했나봅니다. 댓글에 따르면 한 분이 그쪽 까페에 제 블로그 포스트를 소개 하셨다는군요.
파워빌더 개발자분들의 반응은 당연히 이해가 됩니다. 사실.. 델파이 개발자들의 입장에서도, 만약 파워빌더가 많이 건재했다면 일종의 연합 전선(?) 같은 것을 구축해서 함께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겁니다. 어쨌든 델파이와 파워빌더는 2000년대 초반까지 함께 최전성기를 누렸던 좋은 라이벌이었던 만큼 좋은 동반자도 될 수 있었을 테구요. 하지만 지금 현재에 있어서는, 델파이와 파워빌더의 위치는 너무 크게 달라졌고, 파워빌더의 현황이나 미래 전망이 너무나 어두워서 안타깝습니다.
그럼, 왜 파워빌더의 미래가 어두운지 하나씩 살펴볼까요.
신규 시장이 없다
델파이의 경우 지금도 기존 시장이 아닌 신규 시장이 아주 많지는 않아도 계속 나오고 있고, 자바나 닷넷 등의 웹 기반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델파이로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만, 그에 비해 파워빌더는 기존 사용자 밖에 남아있지 않고 새로 늘어날 기미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최근에는 파워빌더에서 델파이로 마이그레이션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곳들도 여러 군데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바나 닷넷으로의 마이그레이션 검토는 더 많겠죠?) 특히 그 중 두 군데는 내년 초부터 바로 가시화되구요. 이런 움직임이, 의외로, 파워빌더 12 발표회를 하던 시기를 전후로 더 많아졌습니다. 꽤 오랜만에 새 버전이 나오는데, 그걸 알게 된 시점에 버리기로 결정을 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평이한 업무 개발에서의 파워빌더의 생산성은 대단하다고 이전 글에서도 썼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실제로 업무 개발 프로젝트의 절대량을 점유하고 있는 자바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까요? 파워빌더의 생산성을 처음 느껴본 CIO나 전산실장이, 기존의 자바를 버리고 파워빌더로 갈까요?
이것이 파워빌더가 신규 시장을 개척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파워빌더와 자바는 둘 다 평이한 업무 개발의 영역에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파워빌더를 단기간에 크게 키웠던 SI 업체들이 지금은 모두 자바에 올인해 있습니다. 최종사용자의 입장에서 기능 면에서 보면, 파워빌더로 가능한 것은 자바에서 대부분 가능하지만, 자바에서는(당연히 델파이에서도) 사소한 것들조차 파워빌더에서는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겁니다. 언어 스펙 자체와 기능들이 많이 뒤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벤더의 닷넷 올인 전략 문제
파워빌더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다른 한가지 중요한 요인은, 벤더의 제품 전략의 실패입니다. 사이베이스 본사의 파워빌더 제품 페이지 메인에서조차 떡하니 파워빌더는 닷넷 언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파워빌더의 기능은 대체로 평이한 업무 화면을 빠르게 개발하는 데에 가장 큰 장점이 있고, 과거 전성기의 시장도 그런 특성에 따른 면이 컸습니다.
그런데 역시 마찬가지로 오직 업무 개발에 있어서 자바와 상대하기 위한 플랫폼인 닷넷으로 올인한 것은, 파워빌더를 사용중이 기업들이 파워빌더 자체보다는 닷넷으로의 전면적인 마이그레이션을 더 고려하기 좋게 해주는 결과가 될 개연성이 높습니다. 죽쒀서 개준다는 얘기입니다. 압도적으로 강한 경쟁사의 품안으로 안겨버린 거죠.
업무 개발 영역에서의 파워빌더의 생산성이 다른 개발툴들보다 탁월하다는 점은 저도 동의하지만, 파워빌더 시장 전체가 닷넷 시장의 일부가 되고 나면 자연히 파워빌더보다는 닷넷에 더 많은 눈이 갈 수밖에 없지요. 닷넷 시장은 어디까지나 MS의 시장일 뿐, 협력하려고 손을 내미는 다른 개발툴 업체들이 파이를 나눠먹을 수 있는 시장이 아닙니다. 더욱이 닷넷 전체 시장마저도 전혀 자바에 실질적인 위협이 못되는 조그만 시장이기 때문에 MS가 다른 벤더들을 배려해줄 입장도 못됩니다.
좀 더 냉정한 분들은 이미 지금 이 순간에도 구버전의 파워빌더로부터 최신 버전을 외면하고 바로 닷넷으로 건너뛰고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장기적인 전망'이라든지 '큰 그림'을 보고 앞서가려고 하니까요.
인수자 SAP의 문제
더욱이 최근 SAP이 파워빌더의 벤더인 사이베이스를 인수하면서 파워빌더의 불투명성은 더욱 더 커졌습니다. SAP의 입장에서 파워빌더는 계륵에 가까우며, 키워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플랫폼 전략 면에서 봤을 때 파워빌더는 기존의 전략과 상충하는 부분이 더 많으니까요. 대표적인 ERP 기업인 SAP의 입장에서는 역시 업무 개발 분야에서 정면으로 부딛힐 수 있는 파워빌더는 키워줄래야 키워줄 수가 없는 툴입니다.
파워빌더는 SAP ERP와 충돌할 뿐만 아니라, SAP이 오랜동안 공들여 키워온 ABAP 언어와도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SAP의 입장에서는 ABAP의 입지를 조금이라도 훼손할 수 있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구요.
물론 SAP이 인수 과정에서 인수한 기존 제품을 슬기롭게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파워빌더로 SAP ERP를 연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추가한다든지 말이죠. 하지만 아키텍처상 그게 아주 어렵고, 된다고 해도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만에 하나 SAP이 그런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역시 파워빌더의 적지 않은 고유 기능들을 대폭 죽이고 갈 것은 필수적인 시나리오입니다.
또, 바로 얼마전에 비즈니스 오브젝트를 인수했을 때의 사례를 보면 SAP이 피인수 업체의 제품들을 그다지 잘 대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인수 이후 바로 특정 제품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가격이나 유지보수율을 크게 올린다든지 해서 결과적으로 고사시켜버리기도 했습니다.
SAP의 입장에서 사이베이스의 가치는 모바일과 데이터베이스이고, 오직 ERP만이 주력인 SAP이 사이베이스의 전체 제품군을 제대로 관리하기에는 사이베이스의 제품 라인업이 너무 방만합니다. 이전에 인수했던 각종 제품들도 넘쳐나구요. 그리고 그중 비교적 덩치가 크면서 시장 효율이 떨어지는, 즉 죽이기 가장 좋은 제품이 파워빌더라고 보입니다. 파워디자이너만 하더라도 엠바카데로의 ER/스튜디오와 함께 DB 모델링 툴 시장에서 양대 메이저이니까 죽이는 결정이 쉽지 않겠지만, 파워빌더는 파워디자이너의 시장 포지션과는 전혀 비할 바가 못되죠.
최신 버전 사용률의 문제
또 다른 중요한 측면도 있습니다. 파워빌더 개발자 여러분께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댓글을 써주신 파워빌더 개발자 여러분들은, 과연 업무에서 파워빌더의 어떤 버전을 사용하고 계신가요? 지난 7월 초에 발표된 최신 버전인 12 버전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2005년에 발표된 파워빌더 10 버전 이상, 11이나 11.5 등의 최근 버전을 사용하는 파워빌더 개발자들이 얼마나 되시나요?
델파이도 아주 오래된 구버전을 사용하는 개발자들도 아직 꽤 많지만, 최근 5년 정도 이내에 발표된 최근 버전을 사용하는 개발자들이 거의 절반 가까이나 됩니다. 그에 반해 파워빌더는 어떤가요? 기존의 구버전 사용자가 적지 않다고 하더라도, 또 사이베이스/SAP이 파워빌더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해도, 신규 매출이 너무 적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델파이는 어떤가
파워빌더와 비교해서, 델파이의 경우엔 벤더 전략이 어떻게 달랐을까요? 한때 델파이 8 버전으로 닷넷 올인을 하다가 개발자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바로 다음 버전에서 바로 윈도우 버전을 다시 되살렸고, 몇년이 지나도 닷넷의 비젼이 그다지 밝지 못하다는 것이 밝혀지니까 사실상 닷넷 지원을 끊다시피 하면서 윈도우 개발에 다시 올인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와서는 윈도우 개발툴 시장은 사실상 무주공산인 상태가 되었고, 델파이와 C++빌더가 신규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되었죠.
또, 파워빌더의 사이베이스가 SAP에 인수된 것처럼, 볼랜드의 델파이를 포함한 개발툴 부문도 엠바카데로로 인수되었지만, 두 인수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존 제품들의 시너지 문제죠. 파워빌더가 SAP에게는 계륵 밖에 되지 않는 존재이지만, 델파이와 C++빌더를 인수한 엠바카데로는 바로 개발툴이기 때문에 인수를 했고, 그래서 기존의 주력 제품군이던 데이터베이스 툴들과 함께 큰 시너지를 내고 있습니다.
제가 파워빌더가 '죽었다'라고 쓴 것이, 지금도 적지 않은 개발자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파워빌더 개발자분들께는 너무 과격한 표현이어서 기분이 상했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지 않은 채로 아주 일부만 남은 과거의 사용자들의 익숙함에만 의존해서 명맥만 유지한다면 그건 이미 죽은 것과 다름 없지 않습니까. 오직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는 거죠.
어떤 분들은, '그 구닥다리 코볼도 아직 사용되고 있지 않느냐' 라고 파워빌더를 코볼과 비교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코볼의 사례와 파워빌더는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코볼의 경우 메인프레임 플랫폼에서 절대적인 중요도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기반인 메인프레임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닷넷 지원 버전같이 다른 시도를 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코볼이 기존의 기반 시장인 메인프레임 플랫폼을 그대로 사수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별다른 경쟁자가 없는 메인프레임 시장에서 메인프레임만큼은 시장을 점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워빌더는 이미 그 전성기때 기반이 되었던 윈도우 플랫폼을 떠나 닷넷에 올인하고 있죠. 이렇게 홈 그라운드 플레이와 원정 플레이의 차이를 무시하고 파워빌더를 코볼과 비교한다는 건 억지성이 좀 강하죠.
위에서 썼듯이... 저를 비롯한 다른 델파이 개발자들도 파워빌더가 더 선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회생을 바라기에는, 벤더의 전략이 스스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방향으로 달리는 데다, 새 주인인 SAP도 파워빌더를 탐탁치 않게 볼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별 가능성도 없는데 파워빌더가 선전하기를 응원하기는 어렵네요.
기타.. 댓글에 대한 코멘트
첫 댓글을 써주신 분은 펜타의 김태훈님이시죠? 언급하신 펜타 까페도 운영하시구요. 반갑습니다. 까페는 전부터 알고 있구요. 죄송하게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가입은 안했습니다. 저는 비공개 커뮤니티는 가입하지 않습니다. (제가 운영하던 커뮤니티도 완전히 오픈되어 있구요)
근데, 독립 커뮤니티 사이트가 아닌 포털의 까페인데다 사실상 벤더인 펜타에서 운영하는 셈이네요. 오랫동안 대형 커뮤니티를 운영했던 경험으로 잠깐 조언의 말씀을 드리자면, 커뮤니티가 벤더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으면 제대로 크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가급적 빨리 벤더와 무관한 개발자로 차기 운영자를 키우시고 운영권을 넘기고 벤더와 커뮤니티를 분리하시는 것이, 커뮤니티로서도 벤더로서도 좋습니다.
까리보이라는 분의 댓글에 대해... PBDN과 같이 오랫동안 홀로 파워빌더를 지켰던 커뮤니티가 말씀하신 대로 '레전드'가 되었다는 것부터가 심각한 일이 아닐까요..? 개발자들의 자생적인 커뮤니티가 죽어가고 벤더의 까페만 남은 셈인데... 그나마 다행일 수는 있지만, 커뮤니티로 보자면 파워빌더가 살아남아 계속 발전하기 위한 충분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참고로 델파이에는 3대 메이저 사이트가 있고, 그 하나 하나가 다 펜타 까페나 PBDN보다도 좀 많이 더 크고 개발자도 많습니다)
'한마디'님에 대해서는... 제가 파워빌더를 직접 써보지 않았습니다만 파워빌더의 장점에 대해서는 알만큼 압니다. 왜냐하면, 제 주위에는 지난 10년 정도 사이에 델파이나 C++빌더로 전향한 왕년의 파워빌더 전문가들이 꽤 많거든요. 하도 많이, 그리고 자세히 들어서 주요한 몇가지는 마치 제가 파워빌더를 꽤 써보기라도 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 그런 파워빌더의 장점들을 열변을 토하면서 설명할 정도의 매니아분들이 파워빌더를 계속 떠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죠.
말씀하신 '특성화', 중요합니다. 뭐 단어 선택으로 보자면 전문화가 좀더 적절하겠군요. 그런데, 델파이와 파워빌더를 비교할 수 없다면, 프로그래밍 언어들 중에서 어떤 언어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Java와 C++? 아니면 C#과 코볼? 제가 보기엔 적어도 한때엔 델파이와 파워빌더가 동일 시장에서 경쟁했던 만큼, 그래도 비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는데요.
개발 경력이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라고 하셨는데, 전 개발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지 22년 되었고 밥벌이 한지는 18년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80년대 말에 시작한 초기 터보C 세대입니다. 그전에 애플 베이직 같은 것은 뭐 제대로 한 건 아니었구요. 제가 기술적인 이슈로 가장 자주 논쟁을 벌이는 제 집사람도 경력이 상당한 자바 전문 컨설턴트이다보니 자바에 대해서도 꽤 압니다. 그러니... 제가 이것저것 언어를 실무에서 다 써보지는 않았어도, 논평을 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물론, '한마디'님이 저와 친한 어떤 선배처럼 80년대 초반에 개발 일을 시작해서 이제 40대 후반을 달리는, 정말 보기 드문 제 윗세대의 선배 개발자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초면의 상대에게 개발 경력 연수를 들먹이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실제 경험치가 그리 깊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가장 하기 쉬운 실수라는 것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민쯩 까봐!" 라고 우기는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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